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 – 1 대 1000 으로 싸우다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 – 1 대 1000 으로 싸우다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를 알고 계신가요? 김구 선생 같이 유명한 독립운동가 몇분을 제외하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많으십니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기억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 소개드릴 김상옥 의사 역시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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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하정우씨가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 영화 ‘밀정’에서 박희순씨가 연기한 의열단 리더 김장옥. 이 두 캐릭터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 졌으니, 그가 바로 쌍권총의 사나이,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입니다.

18 대 1이 아닌, 일본 경찰 1000명과 홀로 싸운 김상옥 의사. 그는 서울에서 일본 경찰들과 시가전을 했고, 마지막 남은 한발의 총알로 자결을 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때 김 의사의 나이 34세로 너무나 젊디 젊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불꽃과도 같은 인생을 살다 최후를 맞이했던 김상옥 의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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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

김상옥 의사 그는 누구인가?

1890년 서울 효제동에서 태어난 김상옥 의사는 집안이 가난하고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 일찍부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영덕 철물상회라는 철물점을 직접 운영해 성공하였고, 직원 50명을 둘 정도로 사업을 번창시켰습니다. 이제 더이상 그는 가난하지 않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상옥 의사는 그런 삶 대신 스스로 어려운 삶을 택했는데요.

자신의 재산을 다 정리한 이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리라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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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1월 중국 상해로 망명한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 신익희, 이동휘, 조소앙 등과 만났고 이후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적극적인 항일 무장 투쟁을 펼쳐나갑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1922년 12월. 김상옥 의사는 권총 4정과 실탄 800발을 들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일생일대의 의거 계획을 가슴에 품고 돌아온 것인데요.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동지들에게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왔습니다.

종로경찰서에 투탄하다

당시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곳이 종로 경찰서였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이 종로 경찰서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1923년 1월 12일 밤 8시.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콰광’ 소리를 내며 엄청난 굉음이 울렸습니다.

이 굉음이 울린 곳은 바로 종로 경찰서였습니다.

김상옥 의사가 이곳에 폭탄을 투탄한 것인데요.

다음날 일제는 소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위해 이 사건을 축소 발표하였고, 자신들은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10여명의 일본 경찰들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고 5일이 지난 1월 17일에 일본 경찰은 투탄을 한 인물이 김상옥 의사임을 알아내고 그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추적에 나섭니다.

1923년 1월 17일 새벽. 김상옥 의사가 은신해 있던 매부 고봉근의 집을 무장한 일본 경찰 20여명이 포위합니다.

이를 알게 된 김상옥 의사는 자신의 은신처가 탄로난 것을 알고는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들고 그들과 총격적을 벌였습니다.

이 총격전으로 종로경찰서의 형사부장이었던 다무라를 사살하였고, 이마세,우메다 경부 등 여럿에게 중상을 입힌 뒤 탈출합니다.

하지만 이후 김상옥 의사의 동료였던 전우진이라는 사람이 일본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 잡혔고,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김상옥 의사의 마지막 은신처를 일본경찰에게 말해버립니다.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최후

1923년 1월 22일 새벽 일본의 경찰과 군인 1000명이 김상옥 의사의 최후 은신처를 포위합니다.

얼마전 2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은신처가 포위되었음을 알게 된 김상옥 의사는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앞으로도 일어나기 힘든 1000대 1의 총격전을 벌입니다.

김상옥 의사는 지붕을 이리저리 뛰어 이동하면서 일제 군경의 총탄 세례를 피했습니다.

김 의사는 쌍권총을 잘 사용하는 달인이었습니다.

권총은 명중률이 낮은 총인데, 실제로 10발을 쏘면 9발을 명중시킬 만큼 김상옥 의사의 사격술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신들린 사격 솜씨로 인해 일제의 군경들은 쉽게 접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000명을 상대로 김상옥 의사는 쌍권총을 이용해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총격전을 펼쳤습니다.

당시 일제는 골칫거리였던 의열단을 완전히 일망타진하기 위해 김상옥 의사를 반드시 생포하라 명했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김상옥 의사는 수많은 일제 군경들을 사살하였지만, 결국 총알이 다 떠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총알 1발. 그는 이 한발로 장렬히 자결하며 상하이를 떠나기 전 동지들과 했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김상옥 의사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다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총격전을 벌이다 어느 집 문을 두드리고 김상옥 의사는

“나 이불 좀 주시오 이불을 주면 그것을 쓰고 탄환을 좀 피해 몇 명 더 쏘아 죽이고 죽을 터이니…”

라고 말했다 합니다.

가족들이 김상옥 의사의 시신을 수습할때 몸을 보니 무려 11발이나 총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1000명을 상대로 홀로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들기 위해 목숨 바쳐 순국한 쌍권총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를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재물운과 행운이 따르는 길한 손금이란?

손금 잔선이 많으면 고생을 많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