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하 치안감 –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한 5.18의 영웅

안병하 치안감 – 전두환의 명령을 거부한 5.18의 영웅



안병하 치안감

안병하 치안감 5.18의 숨겨진 영웅

안병하 치안감 관련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전두환을 필두로한 신구부 세력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행을 휘둘렀고 총까지 쏘면서 강제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때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 는 신군부의 서슬퍼런 명령에 저항했던 경찰 간부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안병하 치안감이었습니다.

광주 시민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안위가 위험해지는 것 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5.18의 숨겨진 영중 중 한명인 안병하 치안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안병하 치안감 1

안병하 치안감 그는 누구인가?

1928년 7월 13일 양양에서 태어난 안 치안감은 해방 이후 1949년 육사 8기로 임관하여 6사단 예하 7연대 포병대에서 연락장교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북한군이 전면적인 남침을 시작합니다.

이때 6사단은 춘천과 가평 일대를 방어하고 있었는데, 북한 2사단이 이곳으로 공격해왔습니다.

당시 중위 계급이었던 안 치안감은 위험을 무릎쓰고 정찰 임무를 수행했고 적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여 알려주었기 때문에 춘천 옥산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웁니다.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1년 5월 화랑 무공훈장을 수훈받습니다.

육군 중령으로 1962년 예편한 그는 같은해에 경찰 총경 특채에 지원. 경찰이 되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부산의 중부 경철서장과 서울의 서대문 경찰서장을 역임했던 안 치안감은 다시한번 큰 공을 세웁니다.

1968년 간첩선을 타고 남한에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를 소탕하는 공을 세운 것 입니다. 이때의 공로를 인정 받아 중앙정보부장 표창과 함께 녹조근정 훈장을 수훈 받습니다.

안병하 치안감 2

광주로 부임하다

5.18이 일어나기 1년전인 1979년 2월 그는 전라남고 경찰국장으로 부임합니다.

부임 1년뒤 그의 인생을 송두리채 흔들어버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광주에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해서 발생했고, 당시 안병하 국장은 광주의 민심을 수습하고 달래가며 시위에 대응해야하는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이때 그는 부하들에게

“시위 진압에 대한 안전 수칙을 잘 지켜라”
“도망가는 학생은 뒤쫒지 말아라”
“시민의 아전에 유의하라”

는 세가지 지시를 하달합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얼마 뒤 당시 계엄 사령관이었던 이희성은 ‘시민군을 진압하라’ 고 하면서 발포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안 국장은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없는 일이라며 거부를 합니다.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의 신군부 명령을 거부해버린 것입니다.

추가로 그는 우발적인 총기 사고를 우려해 경찰들에게서 총기를 회수했고, 시위대에게는 음식과 옷을 나누고 부상자들까지 돌봐주었습니다.

또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적으로 발포하기 직전에 현장에 투입되어있던 경찰 인력을 일시에 해산시켜버리는데요.

이는 시위대와 경찰간에 유혈 충돌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안병하 국장의 이런 노력들은 신군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보안사로 끌려갔으며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직무 유기혐의로 직위 해제되었습니다.

보안사에 끌려간지 8일만에 풀려났지만 안 치안감은 오랜 기간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고혈압과 신부전증에 시달렸고 결국 1988년 10월 10일에 생을 마감합니다.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던 5.18의 숨은 영웅 안병하 치안감은 2017년 11월 16일 인권 경찰로서의 공적을 인정받게 되었고, 치안감으로 추서 및 진급되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시민의 희생을 막고자 본인이 희생한 안병하 치안감을 다들 한번쯤은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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