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악녀 ? 숙종의 왕권 강화 희생양? 중전까지 오른 장희빈

희대의 악녀 ? 숙종의 왕권 강화 희생양? 중전까지 오른 장희빈



희대의 악녀

희대의 악녀? 희생양 ? 장희빈

희대의 악녀 라고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희빈.

희빈 장씨는 조선 시대에서 유일하게 궁인에서 중전의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입니다. 그녀는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왕비이자 제20대 임금 경종의 어머니입니다.

희대의 악녀 1

장희빈 그녀는 누구인가?

희빈 장씨의 본명은 옥정이며,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이고, 어머니는 파평 윤씨입니다.

그녀의 친족과 외족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역관 가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옥정은 11살 때 나인으로 뽑혀 궁으로 입궁했습니다.

희빈 장씨가 숙종을 처음 만나게 된 경위와 연도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숙종의 초비인 인경왕후가 어린 나이에 죽고난 후 숙종과 맺어졌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옥정은 후궁으로 첩지를 받기 전에 경신환국이 발생하여 그녀의 부친인 장현이 이 사건과 연루되어 대비에 의해 강제로 출궁시켰습니다.

이미 승은을 받은 상태였지만, 궐 밖으로 쫓겨나게 된 장옥정은 1683년 명성왕후가 별세한 후에야 다시 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재입궁한 장옥정은 서인과 인현왕후로부터 극도의 적대감을 받았습니다. 서인은 그녀가 남인으로서 숙종의 애정을 받게 되면 남인들이 다시 궁에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며, 인현왕후는 자신이 아닌 장옥정이 숙종의 애정을 받는 것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그녀를 대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한 것입니다.

희대의 악녀 2

장옥정 중전이 되다

하지만 장씨에 대한 숙종의 총애는 남달랐습니다.

장옥정은 1686년 (숙종 12)에 종4품 숙원에 임명되었으며, 함께 취선당이라는 전각을 하사받았습니다.

인현왕후는 서인 김수항의 손녀를 후궁으로 선택했지만 숙종은 이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장씨만을 찾아 총애합니다.

이후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승격되었고, 1688년에는 숙종이 그토록 기다렸던 왕자 윤을 낳게 됩니다. 이때 태어난 왕자 윤이 훗날 경종이 됩니다.

숙종이 왕위에 오른지 14년만에 얻은 소중한 아들을 낳은 장씨에 대한 숙종의 총애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1689년 음력 1월에는 아들이 원자로 책봉되면서 장옥정은 희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인을 대표하는 송시열 등은 희빈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의 의도에 반대하다가 정권을 남인에게 넘겨줍니다.

기사환국으로 인해 서인은 몰락했으며,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폐비되고, 희빈 장씨는 1689년 (숙종 15) 음력 10월 22일에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궁녀 출신의 여인이 중전이 된 것입니다.

장희빈의 몰락

하지만 중전이 된 장희빈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희빈 장씨가 중전이 되고 5년 후인 1694년 (숙종 20), 숙종은 남인정권에서 서인정권으로 갑작스러운 조정 개편을 진행하여 갑술환국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장희빈도 신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중전 장씨의 오라비인 장희재를 급작스럽게 긴급 구속되었고, 폐서인 민씨를 궐로 다시 불러내어 중전으로 복위시키고, 중전 장씨를 강등하여 다시 희빈으로 봉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701년 (숙종 27)에 인현왕후가 사망한 후 이와 관련해 훗날 영조의 어머니가 되는 숙빈 최씨가 장희빈을 발고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발고의 내용은 희빈 장씨가 거처인 취선당에 신당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장희빈의 측근들이 국문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은 모진 고문에도 저주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에 대한 인현왕후 저주설은 숙종과 서인들에 의해 사실화됩니다. 제주에 유배되어 있던 장희빈의 오라비 장희재를 처형하였고, 장희빈에게는 자진하라 명했습니다.

결국 궁녀에서 중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장희빈은 왕명에 의해 자진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장희빈이 죽고 서인들은 세자마저 폐하라 상소합니다. 하지만 이것까지는 숙종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장희빈의 장례는 왕비에 준하여 치르도록 하였으며, 세자 부부에게 상복을 입게하여 3년상을 지내게 합니다. 이후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왕위에 올라 경종2년인 1722년 생모 희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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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가 진실로 저주를 행한 사악한 여인이었는지, 아니면 숙종에 의한 정치적 갈등의 희생양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관련하여 <인현왕후전>이나 <수문록>과 같은 야사나 언문소설에 나오는 장희빈은 서인들, 특히 인현왕후의 오라비인 민진원에 의해 변형되어 묘사되었다는 점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희대의 악녀 로 많이 그려지는 희빈 장씨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